인터렉션 디자이너이자 프로그래머인 앨런 쿠퍼(Alan Cooper)가 쓴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1999, Alan Cooper, 한글 번역본 :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디자인)을 읽었습니다. 디자인 프로젝트 마다 빠지면 섭섭하다는 듯 정성적 디자인 도구를 사용했지만, 정작 도구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습니다. 그저 결과물을 조금 더 힙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신구의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죠. 그래서 하나 하나 파헤쳐보기로 했습니다. 이 책에서 앨런 쿠퍼는 목표 지향적 디자인(Goal-directed design)을 위한 디자이너의 태도와 퍼소나(Persona)를 이야기 합니다.
혹시 주변에서 춤추는 곰(Dancing Bear)1을 본 적 있나요? 곰이 춤을 춘다니… 상상만 해도 신기합니다. 하지만 곰은 결코 훌륭한 춤꾼이 아닙니다. 곰이 춤을 춘다는 것 그 자체가 신기할 뿐이죠. 우리 곁에도 춤추는 곰은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쓰기 불편한 제품과 소프트웨어들이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고 쓰기 쉬워지지 않습니다. 애초에 곰을 춤추도록 조련한 것이 잘못입니다. 왜 곰을 춤추게 만드는 일이 생기는 걸까요?
프로그래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들이 가진 문화는 여느 사람들과 다릅니다(Homo Logicus, Obsolete Culture)2, 3. 그들은 복잡함을 감수하면서 통제하고 싶어하고, 실패를 무릅쓰고 이해하려 듭니다. 이러한 프로그래머들을 중심으로 제품 개발 과정이 흘러가면 춤추는 곰, 시체에 화장하기(Painting the Corpse)4, 뒷좌석에서 운전하기(Driving from the Backseat)5와 같은 제품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래머들은 사용자들도 그들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쿠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퍼소나를 개발합니다.
퍼소나는 제품의 사용자와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에 대하여 정밀하게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Develop a precise description of our user and what he wishes to accomplish)6.
NDS 교통약자 프로젝트의 코디자인 워크숍에서 퍼소나를 활용한 역할극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워크숍이 끝나고도 참여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퍼소나의 직업으로 착각하면서 대화를 나눴던 것입니다.
이처럼 퍼소나는 제작하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도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협업하는 동료들과 타겟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동료들이 사용자에 더욱 깊은 공감을 할 수 있도록 퍼소나를 사용합니다.
퍼소나는 정말 좋은 디자인 도구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정부기관들과 기업들은 퍼소나에 생소하거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서 곰들이 계속 춤을 추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뜻이죠.
곰들이 춤추는 것을 막는 방법은 자본주의 원리에 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가 소비자에게 선택 받지 못한 제품을 없애줄지언정 선택 받지 못할 제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막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완주군 민관정책챌린지 프로젝트는 디자이너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한 한가지 방안을 제시해줍니다. 이 프로젝트는 완주군청 공무원들과 군민들이 함께 서비스 디자인을 교육받으며, 실제로 완주군에 적용될만한 정책을 기획하고 프로토타이핑을 하면서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공무원들과 군민들이 디자인 도구들의 본질을 잘 이해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디자인 도구들의 껍데기만을 배운 것이라면, 디자인 도구를 허상과 환상으로 치부해버릴 테니까요.
디자인 씽킹이 딱 그랬었죠. 디자인 씽킹의 본질이 아닌 껍데기가 세상으로 퍼져나간 결과,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좋지 못한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디자인 씽킹의 껍데기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퍼소나 역시 ‘제 2의 디자인 씽킹 열풍’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도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도구를 제대로 다루는 모습을 보여야 ‘퍼소나 열풍’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존중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1. Dancing Bear, pp.26–27
2. Homo Logicus, pp.93–104
3. Obsolete Culture, pp.105–120
4. Painting the Corpse, pp.142
5. Driving from the Backseat, pp.81–83
6. Persona, pp.123